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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눈높이 낮추기' 인생 <조선일보 2008.09.12>
등록일
2008-09-12
작성자
운영자
조회수
1136
당당한 '눈높이 낮추기' 인생

    선생님 하다가 예비 간호사로, 대위가 중사로…
    "간판보다는 취업"… 전문성 직업 선택 늘어
      대졸자들 많이 몰려… 경제난 새 트렌드로


육군 모 사단의 법무부 검찰서기인 김학영(30) 중사는 '중대장' 출신 부사관이다. 배재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뒤 학사장교로 임관, 7년간 장교로 복무하다 작년 전역과 함께 법무 부사관에 지원해 합격했다. 군은 작년부터 부사관 선발 때 대위 출신은 중사로 임관하고 있다. 공병 장교였던 그는 원래 전역 후 건설회사에 취직할 생각이었지만 자신의 미래에 대해 고민을 하면서 생각을 바꿨다. 군 복무 중 경원대 부동산대학원을 다닐 때 법을 공부하면서 '사법' 분야에 흥미를 느낀 점과 군 생활을 더 했으면 하는 아쉬움을 떠올린 것이다.

"장교였다가 지위가 낮아지는 데 대해 주변 시선을 의식했다면 이런 선택을 못했겠죠. 장교 동기들조차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 내 길을 찾은 것 같아 행복합니다."

최근 고학력자들의 취업난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가운데 학력이나 간판에 얽매이지 않고 전문성과 실리를 좇아 한 단계 낮은 직장을 찾는 '다운그레이드 인생'이 늘고 있다.

지난 7월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대졸 이상의 학력을 가진 비경제활동인구는 257만6000명. 지난해 같은 달(238만2000명)에 비해 8.1% 늘었다. 노동부 청년고용대책과 문기섭 과장은 "고학력 비경제활동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마당에 눈높이를 낮추는 것이 '백수' 탈출의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 서울 적십자간호대학에서 간호대생들이 출산하는 산모 모형 환자를 놓고 간호 실습교육을 받고 있다. 이들 간호대생 중에는 학사 출신 늦깎이 학생들이 많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전문성 있고 오래 일할 수 있다면…


김 중사처럼 요즘 군에선 장교 출신이 부사관직에 지원하는 모습이 낯설지가 않다. 육군의 경우 예비역 장교가 부사관이 된 경우는 2006년 12명, 작년 18명으로 늘었고 올해는 전반기에만 11명에 달한다. 부사관에 지원하는 고학력자 비중도 높아져 전문대학 재학 이상의 학력을 가진 사람의 비중은 2006년 59.3%에서 2007년 62.7%, 올해 상반기 73.3%로 급격히 커지고 있다.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또 다른 곳이 간호대학이다. 최근 3년제 간호대학에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한 학사 출신 늦깎이 학생들이 넘쳐나고 있다. 간호사 시험에 합격하면 거의 100% 취업이 보장되기 때문. 매년 150명 이상의 4년제 대학 졸업생들이 간호대학에 입학하고 있다.

적십자간호대학 3학년 손영란(여·35)씨의 경우 성신여대에서 윤리교육학을 전공하고 잠깐 고등학교 기간제 교사로 일하다 간호사를 선택했다. 결혼과 출산으로 교사직을 그만둔 뒤 다시 일을 찾다가 학사 출신을 위한 특별 전형이 있다는 말을 듣고 영어 시험과 대학 성적으로 2006년 간호대학에 입학했다. 손씨는 "평생 한 분야의 전문인으로서 일할 수 있는 간호사를 선택하길 잘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숭실대 중문과를 졸업한 같은 대학 3학년 석재욱(36)씨는 전문성 없는 단순 사무직으로 일하던 회사가 다른 회사에 합병되는 바람에 한 순간에 실업자가 된 경험을 바탕으로 간호사직에 도전했다. 그는 "한 병원 원무과에서 사무직원으로 일하다 전문성 있는 간호사를 보면서 진로를 바꿨다"고 말했다.




◆대졸자 몰리는 기능인 교육장


화이트 칼라(사무직)를 포기하고 공장에서 '기름밥'을 먹겠다는 대학 졸업생도 적지 않다. 노동부 산하 폴리텍대학 기능사 과정(교육과정 1년)은 과거 고졸 구직자들의 독무대였지만 최근엔 2·4년제 대학을 졸업한 구직자들이 몰려들고 있다.

중앙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김성훈(36)씨는 작년 2월부터 선박 제조업체에서 엔진 부품을 만들고 있다. 대학 졸업 후 액자 제작사업을 하던 그는 2006년 동업자의 배신으로 모든 걸 잃었다. 방황하던 그는 선반 기술을 배워 새 출발하기로 마음먹고 작년 폴리텍대학(창원캠퍼스)에 입학했다.

주변 친구들은 "멀쩡하게 대학 나와 공장에서 일하려고 하느냐"고 말렸지만 "운 좋게 전공 살려 관리직으로 취업해도 40대 후반만 되면 사표를 써야 하는 현실이 싫다"며 그는 자신의 길을 고집했다. 3500만원 안팎의 연봉을 받는다는 그는 "지금 몸은 힘들어도 기술만 제대로 익히면 다시 창업할 수 있다는 꿈이 있다"고 말했다.

폴리텍대학의 경우 2006년 1년짜리 기능사 과정 입학생 중 전문대학 졸업 이상의 학력을 가진 사람이 35%(2083명), 2007년에는 40%(2521명), 2008년에는 41%(2586명)로 점점 증가 추세다. 폴리텍대학 허병기 이사장은 "간판보다는 취업에 도움이 되는 기능을 익혀 도전하겠다는 실용적인 인식이 전반적으로 확산된 결과"라고 말했다.



 
▲ 이미 대학을 졸업한 경험이 있는 학생들이 다수 포함된 적십자간호대학. 그러나 새로이 간호분야에서 자신을 길을 모색하는 이 학생들은 자신의 선택에 행복해 하고있다. /이진한 기자


입력 : 2008.09.12 02:59 / 수정 : 2008.09.12 06:09